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핀리 (문단 편집) == 커리어 == 이 때 일화가 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조던과 1:1로 붙은적이 있었는데 이 때 조던을 이기지는 못했으나 조던을 앞에 두고 연속 득점을 하기도 하면서 조던에게 5년안에 다시보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핀리는 시카고 외곽 출신이며 조던의 믹스테이프를 여러번 돌려보고 조던의 기사를 방에 붙여두던 조던 덕후였다. 대학교 때는 부상경력 때문에 준수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픽 순위가 내려가 결국 21순위에 지명되었다. 하지만 스틸픽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꽤 있었고 결국 이는 사실이 되었다. 피닉스에서는 첫 해에 평균 15득점 4.6리바운드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루키 퍼스트팀에 들었다. 이듬해 댈러스가 트리플 J를 해체하고 [[제이슨 키드]]를 [[피닉스 선즈|피닉스]]로 트레이드 시켰는데, 이 때 핀리도 트레이드에 묶여 댈러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이후 97-98시즌부터 댈러스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댈러스가 남은 2J인 짐 잭슨과 자말 매쉬번도 처리하면서 약해진 팀을 숀 브래들리와 함께 지탱했다. 뛰어난 운동능력과 활동량으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특히 전성기인 97-98시즌부터 00-01시즌까지 무려 4시즌동안 평균 42분 가까이 뛰면서 철인의 면모를 보였다. 댈러스의 2000년대 첫번째 중흥기를 이끈 장본인인셈. 그러나 01-02시즌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490경기 연속 출장기록이 깨지게 된다. 이후 햄스트링 부상과 다리쪽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팀은 중흥기를 맞았는데, 정작 자신은 서서히 내리막을 타게 되었다. 서서히 내리막을 타다가 댈러스에서 연봉에 부담을 느끼고 사면조항을 이용해서 핀리를 토사구팽했다. 이에 분노한 핀리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디트로이트]], [[마이애미 히트|마이애미]], [[샌안토니오 스퍼스|샌안토니오]] 등 여러 팀을 물색하다가 [[샌안토니오 스퍼스|샌안토니오]]로 이적하게 된다. 샌안토니오에서는 좋은 롤플레이어였고 [* 당시 같은 포지션에 [[마누 지노빌리]]가 있었지만 그가 전략상 식스맨으로 나오는 바람에 "식스맨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주전"으로 기용된 적이 있다. 07-08시즌 당시 지노빌리는 23경기, 핀리는 61경기에 주전으로 나왔음에도 지노빌리가 출장시간도 약간 더 많고 활약상은 월등했다. 지노빌리는 올NBA써드팀에 오를 정도. 참고로 왜 합계가 82경기가 아니냐면 두 선수 모두 다른 포지션으로 출장한 경기가 소수 있기 때문인데 어쨌거나 둘 다 주 포지션은 슈팅가드로 출전했고, 주전으로 주로 출장한 선수는 핀리, 팀내 주축은 지노빌리였다.], 샌안토니오에서 첫 시즌인 05-06시즌에는 친정팀인 댈러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깨지기는 하지만, 다음 시즌에 벤치 멤버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고 팀은 클리블랜드를 맞아 우승을 하는데 성공하며 반지를 따낸다. 이후 샌안토니오에서 09-10시즌까지 뛰다 더 많은 출장시간을 받고 싶어 중간에 팀에서 나온뒤 베테랑 미니멈 옵션으로 보스턴으로 합류해 한 시즌 뛰고 은퇴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